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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누리 역대 편집인을 만나다. 변지연, 한정희, 백부경, 하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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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인회 작성일11-07-19 01:55
조회5,4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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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겨울 계간지로 창간호를 발행한 이래, 2005 7월 격월간지, 2008 11월 월간지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른 한누리”. 싱가포르에 거주했던 한인이 3,500여명에 불과했던 시절, 친밀한 한인사회의 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예지의 성격을 띠었던 1990년대를 지나, 싱가포르에도 한류가 자리잡기 시작한 2000년대를 넘어, 한인사회도 2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제 한인끼리 뭉치는 작은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싱가포르 주류사회에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로 도약해야할 때이다. 2000년부터 한누리를 담당했던 역대 편집자들을 만나 한누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기약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거주하고 있는 변지연, 한정희, 백부경, 하보이 씨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국에서 한누리의 경험을 살려 편집일을 하고 있는 신정원 씨는 축하인사를 보내왔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변지연 2001 1~2002 12

한정희 2003 1~2003 12

백부경 2004 1~2004 8

하보이 2004 8~200710

신정원 2007 6~ 2008 6

언제, 어떻게 싱가포르에 오게 되었는지한인회에 근무하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변지연  1994년 남편이 싱가포르에서 근무하게되면서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키우는데 전념하다가 공지를 보고 지원하여 한인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01 1월부터 2002 12월까지 2년간 한인회에서 근무했으니까 당시에는 계간지였으니 여덟권의 한누리를 낸 셈이죠. 2003년에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작년 9월에 다시 싱가포르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정희 저는 2002년말에 싱가포르에 오게되었고, 변지연씨와 알고 지내다가 지연씨가 퇴직하게 되면서 소개로 한인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031월부터 200312월까지 1년 동안 네권의 한누리를 만들었습니다.

백부경  2003 8월에 남편과 싱가포르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취업을  하려고 생각할 때 한인회에서  공지를 보고 20041월부터 근무했는데 아이가 생겨 8월에 일을 그만두게 되어 8개월 간 근무하였습니다.

하보이  제가 중국어 전공이라 1997년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귀국하고 나니 중국어를 활용할 일이 별로 없어 안타까웠었죠. 당시 한인회 사무국장으로 계셨던 배광세계 국장님을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싱가포르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셔서 오게 되었습니다. 20048월부터 200710월까지 3년 정도 한인회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한인사회는 어땠나요?

변지연 당시 싱가포르 한인은 약 5,000명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식당은 20개 정도 있었을까.. 푸드코트에 하나 둘 한식 코너가 생기기 시작할 때였어요.

한정희 제가 근무할 때도 한인은 6,000명 정도? 그런데 2003년은 전염병 SARS로 싱가포르가 크게 타격을 입던 상황이었고, 주재원 가족들도 귀국시키고 그럴 때였어요. SARS로 인해 계획되었던 행사들이 취소되는 일들이 많았죠.

하보이  제가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한류가 본격적으로 상륙했을 때라 한국관련 요청도 많아지고, 한인인구도 7,000~8,000명 정도로 급증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한인들을 위한 회관의 필요성이 제시되어 회관 구입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끝에 구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각 시기별로 한누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텐데

변지연 당시에는 계간지로1,000부 정도 발행했었는데 한번 보고 마는 잡지가 아니라 한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매체로 발전시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화보 소식을 강화했던 게 그 때였죠. 공식 행사가 아니더라도 싱가포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인들의 모습을 많이 담아 재미있게 보여주자 싶었어요. 형식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모습을 담아내자는 거였고, 그에 대한 반응이 좋았습니다. 한인회 전반적으로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로위로연이 그때 처음 시작되었었고, 한인가족 한마당, 송년의 밤 등도 정기적인 행사로 체계적으로 정착시켰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표지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계절을 싱가포르에 보여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구요.

한정희  변지연씨가 워낙 자리를 잘 잡아놓으셔서, 저는 큰 변화없이 그 형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었어요. 대부분의 지면이 흑백으로 구성되었지만, 중요한 행사 등은 컬러 화보로 입체감 있게 구성하도록 신경썼습니다. 

하보이 한누리 지면을 증면하고 전면 컬러로 제작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계간지였던 한누리가 50호부터 격월간지로 발행하게되었습니다. 한인매체가 한누리밖에 없던 시절이 지나가고 이때부터 한인매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가장 역사가 있는 매체였던 한누리로서도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던 시기였으니까요. 싱가포르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거나, 싱가포르에 숨어 있는 명소들을 소개하면서 취재하는 저 역시 좋은 곳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영호 편집위원께서 원고 섭외도 해주시고, 박정희 편집위원께서 직접 교정도 봐주시는 등 편집위원들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취재, 편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변지연  한인사회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이 있었는데알렉산드리아 로드에서 엄마와 아이 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한인들이 지금처럼 많이 살지 않던 때라 누구랄 것 없이 자신들의 일처럼 관심을 갖고 애통해했었죠. 한인회 주관으로 마련한 추모제에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슬퍼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도 기억에 남아요. Fort Canning, Padang에서 응원전을 펼치면서 이전과 달리 한인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정희 취재나 편집도 쉽지 않았지만 한누리가 나오면 수백권을 봉투에 담아 우표 붙여서 우편으로 보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며칠씩 작업해서 보내고나면 참 뿌듯했던 기억이 있네요.

하보이 정원상 초대회장님을 만났던 것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싱가포르에 200~300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었고, 회장님께서 한인들 뿐 아니라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고국에서 온 선수들까지도 아버지처럼 돌보셨다는 이야기는 가슴 찡한 여운이 있었습니다.  해뜨기 직전에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서 새벽부터 나가서 기다렸다가 담아낸 사진들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한누리가 나오면 우편으로 보내느라 몇백권을 봉투에 담아 우표 붙이고 했던 작업들도 만만치 않았어요. 똑 같은 싱가포르 우표 보는게 지루해서 새로운 우표 나오기를 기다릴 정도로요.(웃음)

100호 발간을 맞아 한누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변지연 너무 오랜만에 만난 한누리가 100호 를 맞게되었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기억에 남는 한 부분을 차지해서 영광이고 기쁩니다. 지금까지 해나간 거처럼 앞으로도 계속 역할을 잘 하길 바라며,  싱가포르에 한인들이 사라질 때까지 영원하길 바랍니다.

한정희 지금도 책꽂이에 제가 발간한 한누리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데,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볼때마다 뿌듯해요. 가끔 한식당에서 한누리를 보면 참 반갑구요. 100호 발간될 때까지 일부라도 보탬이 되었다는게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싱가포르 한인사회는 오래 거주하기보다는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분들이 많은데 그 속에서 한인사회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한누리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인사회 속에서 200, 300호를 발간할 때까지 계속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백부경 한인회에서 일하면서 한인회 잡지 한누리제작에 참여하게 된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던 것에 대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창간호에서 100호가 되기까지의 한누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누리를 사랑한 모든 한인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에 향후에도 모든 한인들의 목소리를 규합할 수 있으며 그들을 위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대안의 모색을 강화 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다 해 주었으면 합니다.

하보이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한누리의 로고만 봐도 기분이 좋고 반갑습니다. 한누리를 만드는 분들이 고생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신정원 한누리 1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누리를 담당 했던 시간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한누리가 100호를 발간 한다니 정말 기쁘고 기쁜 일입니다. 앞으로도 싱가포르 한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200, 300호 영원한 한누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누리 100호 발간을 하면서 꼭 만나고 싶었던 이들, 기억해야할 이들을 만나 뜻깊은 시간이었다. 같은 일을 해왔기에 누구보다 고충을 잘 알고, 이해하는 분들이서였을까. 이분들이 있었기에 한누리 100호 발간이 가능했다는 사실 역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들의 바램처럼 한누리가 오랫동안 싱가포르 한인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란다.

취재, 촬영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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